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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미리 추모의 숲 가는길, 예쁜데 슬픈 길

라라윈 2018. 2. 8. 00:26

라라윈 용미리 추모의 숲 가는길, 예쁜데 슬픈 길

엄마가 갑자기 애교와 존대말을 섞어가며 용미리 추모의 숲에 가고 싶다고 부탁을 하셔서.... 다녀왔습니다.

저는 외할머니 친할머니 두 분 다 돌아가신 뒤에 찾아가 뵌 적이 없었습니다. 할머니 장례식 날도 할머니는 이미 그 곳에 안 계신다는 느낌이었고, 이미 천국에 계실텐데 묘지에서 그 분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내진 않은 채, 엄마가 가고 싶으시다니 따라 나섰습니다. 정작 아빠는 덤덤하신데, 왜 시어머니 묘지에 못 가봐서 마음이 안 좋다고 하시는지.....


서울을 벗어나 용미리로 향하는 길에 엄마는 "거기 계시지도 않는데, 그냥 나 편하자고 가는거지 뭐." 라는 혼잣말을 하셨습니다.

"응. 할머니 천국에 계실거야."라고 추임새를 넣자, "그러게. 아는데 안 가보면 마음이 좋지 않아서.... 정말 가는 사람 마음 편하려고 가는거야. 이건..." 이라며 성묘길을 산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길로 정의하셨습니다. 애초에 저도 아빠 엄마 때문에 온 거라, 모두의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길이었습니다....



용미리 추모의 숲 가는 길 5~6km 전 꽃집

역촌동 - 연신내 - 구파발을 지나는 내내 꽃집이 없어서, 그냥 용미리 추모의 숲 가는 길 근처에 팔겠거니 하면서 갔습니다. 추모의 숲을 5~6km 남겨 놓은 지점부터 꽃집이 즐비했습니다. 아무래도 조화와 국화 화분이 제일 많이 팔리는지, 바깥에는 강추위에 말라죽은 국화 화분이 한가득이었어요. 죽지 않는 현란한 조화도 많았고요.



엄마가 뛰어 가셔서 하얀 소국 두 송이를 사오셨습니다. 두 송이에 4천원이라 한 겨울 꽃값 & 명절 대목의 용미리 꽃값 치고는 저렴하게 잘 산 것 같아 함께 기뻐했습니다. 대신 두 송이 샀다고 포장을 안 해주셨다고 합니다.

이 집 뒤로도 드문드문 꽃집이 많았습니다. 용미리에 오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인지 가는 길에 있던 편의점도 '제수용품 판매' 라고 입간판을 큼직하게 세워 놓았습니다. 돈만 들고 오면 가는 길에 꽃도 사고 제수용품도 다 살 수 있을 듯 합니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길

처음에 용미리 제2 추모의 집 근처라고 하셔서 그 쪽으로 갔다가 좀 헤맸습니다. 제2묘지인지 제1묘지인지 헷갈리셨나봐요. 왔던 길을 더듬으며 알려주셔서 가다가 헷갈리신다고 해서 용미리 수목장지로 검색했더니 바로 나왔습니다. 수목장지는 제1묘지였어요.

용미리 제1묘지 입구의 향나무를 보자 마자 여기 맞다며 기뻐하셨어요. 그리고, 같이 안 왔으면 못 왔을 뻔 했다며, 버스 타고 오기에는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와서 걸어서 묘지를 찾는 것은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걸어올 곳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며 묘지 안으로 들어서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걸어 내려오고 계셨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저 할아버지도 부인보고 가시나보다. 성당에도 여기에 매일 같이 오시는 할아버지가 계셨어. 아침에 일어나서 버스타고 걸어서 오시는거야. 거기 안 계시는데 왜 자꾸 가시냐고 여쭤봤더니 그래도 보고 오면 좋으시다고 매일같이 오셨어." 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아빠는 근황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도 돌아가신 것 같아. 지난 달에 전화하니 번호가 사라졌더라고."


걸어오기에는 참 먼데....

게다가 오늘 영하 17도 였는데....

그래도 부인 묘지에 매일 오는 할아버지들이 계시나 봅니다.....


콧등 시큰해 지는 가운데 수목장지 근처로 들어섰는데,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를 모신 나무는 큰 길가 옆이었는데 큰 길을 못 찾아 수목장지 주변을 돌았습니다.


"아무래도 길을 없애고 저 나무들을 새로 심은 모양이다."


라고 하셔서 차를 대고 걸어서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다음에 헤매지 않도록 바뀐 안내도부터 찍어 놓았습니다. 자주 오셨던 부모님도 헤매실 정도로 묘원이 변하며 좋아지고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좋았습니다. 잘 관리되고 있다는 증거 같았습니다.



용미리 추모의 숲 수목장지 앞 쪽에는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근사한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용미리 묘원 곳곳에 왕릉 모양 제단도 있고, 석상 모양 제단도 있고, 무게감 있는 제단들이 있었습니다.



할머니 나무를 찾아 올라가는 길에 보니, 새로운 분들을 기다리는 나무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니 모실 때는 나무 한 그루에 열 분을 모셨는데, 지금은 스무 분을 모시나 봅니다. 이웃분들이 좀 더 많아지나봐요.



숨 헐떡이며 올라오다 보니, 아빠가 할머니 나무를 찾아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할머니 모실 때만 해도 아직 제대로 정돈이 되어 있지 않아 땅은 진흙 범벅에 나무는 볼품없는 묘목이었는데.....



이제는 제 키의 몇 배가 되도록 훌쩍 커져 있었습니다.

할머니 이름이 쓰인 나무 앞에 서 있는데, 햇살이 따뜻했습니다. 할머니가 여기 계시진 않겠지만 아무튼 할머니 이름이 쓰여진 나무판과 나무가 따뜻한 햇살 속에 있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너무 추운 날이라 따스해서 기분이 좋기도 했고요.



이 때 토실토실한 냐옹이가 나타났습니다. 우아한 걸음으로 나타나 저희 식구들을 바라보는데, 반가웠습니다.


"어머, 이 넓은 곳에서 고양이를 보다니...... 어머, 네가 우리 마중왔구나... 고맙다..."


라며 엄마는 인사를 하시고, 기도하는 동안 지켜보던 고양이는 곧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보니 다른 가족들 모여 있는 곳에 또 있는 것을 보니 묘원젯밥 타이거 인가 봅니다...... 냥이 정체가 무엇이든 이 드넓은 곳에서 불쑥 나타나 지켜보는 고양이가 아주 반가웠습니다.



아름다운데 서글픈 용미리 추모의 숲

여기 계신 분이 많다며, 오신 김에 근처에 계신 분도 보고 가고 싶으시다고 하여 몇 분의 묘소에 더 들렀습니다.

용미리 묘지에 아는 사람이 많다라.....


"여기 아는 사람이 많아? 그럼 다 보고 가." 라고 했더니 "안 돼. 너무 많아서 다 보고 가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근처에 있는 이 분만 보고 갈거야." 라며 앞장서셨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묘원에 인맥이 많아지는 걸까요.....


다른 분들 묘지를 보는 사이, 아빠 엄마는 계속 감탄을 하셨습니다. "어머, 여보 이거 새로 생겼네." "그러게, 나무 계단이 여기까지 밖에 없었는데." "어머, 여보 이것도 생겼어." 라며 그 사이 새로 생긴 것들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계단도 잘 되어 있고, 의자, 제단, 휴식 공간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진짜 공원처럼.



점점 넓어지고, 좋아지고 있나 봅니다. 언제 또 올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오면 차를 어디에 댈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걸을지) 보니 왕릉 추모의 집을 끼고 쭈욱 올라가면 추모의 숲(수목장지) 주차장이 있었습니다. 안내판 근처에는 추모의 벽도 세워져 있었습니다. 하늘빛 유리로 된 추모의 벽이 근사해서 다가가 읽어보았습니다.



(저처럼) 할머니 할아버지 찾아온 분들은 상당히 해맑은 느낌이었고, 부모님 찾아오신 분들은 조금은 더 서글퍼 보였습니다.



딸, 동생을 묻은 분들의 글 앞에서는 또 눈물이 났습니다. 이 곳은 참 예쁜데... 슬퍼요.



속 없이 햇볕만 참 좋아요.

아..... 할머니 장례식날 보니, 비까지 내리면 더 마음이 좋지 않으니 햇볕이라도 속없이 좋은 것이 나은 것 같습니다.



용미리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 벽제갈비

점심을 갈비집에서 먹을 계획은 없었는데, 용미리 추모의 숲 가는 길에 엄마가 "벽제갈비다. 저 집 맛있어. 갈비탕도 맛있고 반찬도 아주 깔끔하게 잘 나와."라며 추천하셔서, 나오는 길에 벽제갈비에 들렀습니다.



갈비탕은 10,000원, 갈비 정식은 1인당 13,000원이었습니다. 갈비정식은 2인 이상 주문이라, 엄마 아빠 꼬셔서 같이 같비정식을 먹었어요. 세 명인데 반찬 양쪽에 두 세트 놔 주시고, 갈비 다 구워주시고, 친절하고 깔끔합니다. 맛도 좋았어요.

갈비 정식 잘 먹고 나오며 "할머니 꼬기 좋아하셨으니까, 우리가 대신 먹어서 기쁘실거야, 그지?" 라며 철없는 성묘를 마쳤습니다.



- 쿨하게 사는 것, 마지막에 보니 쿨하지 않다

- 결혼을 꼭 해야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는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