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철학/생각거리

전도는 이렇게 하는거라는 생각이 든 부활절 달걀 나눔

라라윈 2018. 4. 1. 23:35

라라윈 생각거리 : 전도는 이렇게 하는거라는 생각이 든 부활절 달걀 나눔

지난 주 일요일에 장보러 갔다가 일요일에 마트 앞에 튀김 포장마차가 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오징어 튀김, 새우 튀김이 너무나 맛있어 보이는데 달랑 카드 한 장 밖에 안 가지고 나와서 현금이 없었습니다. 튀김 3천원 어치 사 먹자고 현금 인출 수수료 1,400원을 낼 수는 없었어요. 현금 인출 수수료 내고 만원 찾아서 튀김 사 먹을까 무척 고민했는데, 저에겐 카드가 되는 튀김 고로케집이 대안으로 있었어요. ㅋㅋㅋ

오늘은 지난 주에 못 사 먹은 튀김을 사 먹으러 현금을 챙겨 마트에 갔습니다. (튀김에 대한 강한 열정)


마트 근처에서 근사하게 차려 입은 할아버지가 다가오시더니 제 앞 사람에게 뭘 건네고 가셨습니다. 뭘까, 궁금해서 흘깃거리는데 할아버지 혼자가 아니라 근사하게 양복 차려 입으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여러 분 계셨어요. 그 중 한 분은 큼직한 바구니를 들고 계셨습니다.

그 바구니에서 부활절 달걀을 나눠 주고 있었어요.


전 낯선 사람에게 길거리에서 음식을 안 받습니다.

낯선 사람에게 껌, 요구르트 등을 얻어 먹고 나쁜 일을 당한 사례에 대해 많이 들어서 겁나기도 했고요. 그냥 불안하고 겁이 나서, 요구르트, 사탕, 휴지 등등 뭘 줘도 안 받고 눈도 안 마주치고 지나갑니다. 특히 교회 전도 음식은 조건부로 이거 먹고 교회 나오라고 하니 더 불편해서 쓱 지났습니다.


마침 오늘은 제 앞에 가족이 가고 있어 그 분들에게 부활절 달걀을 나눠주느라 정신 없으시길래 그 틈을 타서 못 본 척 지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보다 할아버지가 더 적극적이셨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이라 기쁜 날이에요."

"자, 다 나눠 줬나? 누가 못 받았나?"


하시며 살뜰히 챙겨서 모든 사람들에게 부활절 달걀을 하나씩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흡사 손주들에게 간식 하나씩 챙겨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제일 좋은 양복 차려입고 교회 가셨다가 부활절 달걀 나눠주러 나오셔서, 정말 기쁜 날이니까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 분들이 다니시는 교회에 오라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부활절은 아주 좋은 날이니까 달걀 나눠주며 기분이 좋으신 것 같았습니다.


낯선 사람에게 길거리에서 음식을 받지 않는다는 규칙(?)을 깨고 얼떨결에 할아버지의 기분 좋은 부활절 달걀을 받았습니다. 요란한 전도 책자나 쪽지도 없고, 비닐 포장에 달걀 하나 달랑 들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동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으시다보니, 이거 일일이 꾸밀 사람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교회 관계자나 젊은 사람이 인터넷으로 대량 주문해서 포장지에 달걀을 넣는 단순 포장만 하신 듯 했습니다. 뒷면에 10포인트 크기의 작은 글자로 인쇄된 교회 이름 스티커 하나만 엉성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나눔의 의미가 더 클 뿐, 전도의 의지는 없는 듯 합니다...


튀김 집에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또 다른 무리의 어르신들이 달걀을 들고 뛰어 오셨습니다. 튀김집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못 받았죠? 이거 먹어요." 라고 하고 놓고 가셨어요. 튀김집 아주머니 왈 "저 오늘 여기서 장사 하면서 달걀만 다섯개 째에요 ㅎㅎㅎㅎ"

나눠주는 사람이 사심없이 기분 좋아서 나눠주려고 하니, 받는 사람도 부담이 없었습니다.


부활절 달걀도 받고, 지난 주에 현금 안 가지고 가서 못 사 먹은 튀김도 사서 기분 좋게 돌아왔습니다.

다만 튀김은 에러였어요. 튀김을 다시 튀겨준 것이 아니라, 기름에 스쳐서 다시 줬는지 튀김이 차갑고 기름만 묻어서 느끼했습니다. 어쩐지 매주 일요일만 오시는지, 다른 날도 오시는지 물어봐도 못 들은 채 하시더니... 초보이신가 봅니다. 아주머니가 튀김 구매력 만큼은 대단한 저를 몰라보셨어요.

기름 스친 차가운 튀김에 입맛이 버렸으나, 한참 뒤 출출해져서 받아온 부활절 달걀을 까 보았습니다.



그냥 찐 계란이 아니라 찜질방 구이란이었어요. 포장지 뿐 아니라 계란도 인터넷에서 대량구매 하셨나봐요.ㅋㅋㅋㅋㅋ


맛있게 냠냠 먹으며, 전도란 이렇게 해야 되는 것 같았습니다.


피곤에 쩔은 표정, 자신도 힘든 티가 역력한데 "지금 행복하세요? 교회 나오세요." 이런 소리를 하면 불편하거든요. 꼴랑 요구르트 하나, 휴지 하나 주면서 "우리 교회 나오세요."라는 것도 억지스럽게 느껴졌고요. 그런데 오늘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정말로 부활절 축제를 즐기고 계신 것처럼 보였어요. 그 모습을 보니 교회가 갈만한 곳 같았습니다. 사람이 행복해 보이잖아요.


달랑 달걀만 있고, 교회 전도를 하겠다는 표시가 없는 것도 되레 좋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요란한 포장, 깨알같은 글씨로 왜 교회에 나와야 되는가를 설교해 놓은 책자, 교회 이름과 전화번호 위치를 이따시 만하게 뻘겋고 퍼렇게 표시해 놓으면 삐라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담백하게 교회 이름 스티커 하나 깨알같이 붙여 놓은 것이 더 편안했습니다. 전도 하는 순간부터 강요하고 부담스럽게 굴면, 이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면 얼마나 피곤할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전도의 핵심은 "교회 나오세요." "예수 믿으세요." 이런 말보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 비언어적 메시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튼 기분 좋은 부활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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