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의사선생님은 부채도사 진료 기계가 되셨을까?

라라윈 생각거리 : 어쩌다 의사선생님은 부채도사 진료 기계가 되셨을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며 진료실에 들어서는데, 의사 선생님은 제 처방전을 쓰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환자가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기도 전에 부채도사처럼 제 증상이 어떤지, 어떤 처방을 하면 되는지 알아채셨나 봅니다. 처음 보는 의사선생님인데 정말 용했습니다.


부채도사, 의사선생님


부채도사 의사선생님은 혼자 처방전을 적다가, 의례적으로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셨어요?" 라고 물었습니다.


"목이랑 허리가 아프고요. 어깨가 너무 아파서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아프고요."


저는 의사선생님을 쳐다보며 말을 하고 있지만, 단 한번도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습니다. 듣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기계와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의사 만날 때 이런 적이 한 두 번도 아니니, 듣거나 말거나 계속 주절거렸습니다. 그러자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도 귀찮았는지 제 말을 끊었습니다.


"그건 원래 본인 나이 정도면 그런 증상이 생길 수 있어요. 엑스레이 보니까 그렇게 심한 건 아니구요. 자세히 알려면 MRI를 찍어 봐야 돼요."


'자세히 알려면....' '정밀 검사를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이 말도 지겹도록 자주 들어본 말 입니다. 어쨌거나 답답한 것은 저이니, 제 증상과 원인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요. 현대인들은 컴퓨터에 앞에 앉아서 일하면서 장시간 앉아 있어서 그런 것도 있고요.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일 수도 있지요."


스트레스, 과로..... 선생님 말을 듣다가 '뻔한 대답이 나올걸 알면서 왜 물어봤을까' 하는 후회를 했습니다. 그놈의 스트레스와 피로, 때때로 알레르기를 빼면 의사선생님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지 궁금할 지경입니다.


"그럼 앞으로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늘은 물리치료 받고 가시고, 앞으로 오셔서 물리치료 받으시고요. 과로하지 마시고,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웬만하면 쉬셔야..."


'에라이. 진짜. 나도 의사 하겠다,' 라는 욕이 목구멍까지 밀려올라왔습니다. 아무 것도 안하고 쉴 수 있다면, 뭣하러 의사선생님을 찾아 빨리 고치려고 하겠습니까. 눈치보면서 업무시간 중간에 병원을 오는 이유는 빨리 치료받고 다시 일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고쳐서 잘 쓰려는 것이지, 고쳐서 집에 모셔두려고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의사선생님과 뻔한 대화를 하노라면 답답합니다. 좀 더 증상이 심각해 종합병원에 다니는 동료는 화가 나서 "일을 해야 선생님 보러 오는 돈을 낼거 아닙니까? 종합병원 한 번 오면 50만원 가까이 내야 되는데, 일 안하고 쉬면 돈이 없는데 어떻게 치료를 받습니까?" 라고 따져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료의 반란에 의사선생님은 고장난 라디오마냥 "아무튼 쉬셔야 되요.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요." 라고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거의 기계 수준이라 느껴지기도 합니다.



# 진료 기계와 비슷한 의사 선생님 멘트들


이처럼 무성의한 진료를 하는 선생님들이 한 둘이 아니라서.... 환자들은 우스개소리로 의사선생이 무슨 소리 할 지 다 안다는 말도 합니다.


[원인]

1.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다고 한다,

2. 피곤해서 그런다고 한다.

3. 알레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방]

1.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한다.

2. 쉬라고 한다.

3. 마른 사람에게는 운동하라고 하고, 살 찐 사람에게는 살 빼라고 한다.


이 범위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가끔은 굳이 의사가 진찰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아파서 낑낑거리며 한 시간 가까이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2분, 빠르면 1분 정도 부채도사같은 의사선생을 만나고 나오는 때면, 원격진료를 해도 별 차이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차피 의사를 만나러 가도 의사가 제 얼굴 한 번 안 쳐다보고 의례적인 말만 서 너 마디 할 뿐인데, 이러려고 한 두 시간 기다리느니 원격진료를 받으면 병원에 오가는 시간과 대기실에서 멍하니 있는 시간이라도 절약될 것 같아서요. 더욱 비약하자면, 이렇게 성의없는 진료는 기계가 해도 별 차이가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계도 "스트레스 받으셔서 그래요. 쉬세요. 약 처방해 드릴게요."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격진료


# 어쩌다 무성의한 진료가 당연한 일이 되었을까?


의사들의 무성의한 진료를 경험할 때면 화도 나고, 한 편으로는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을까 답답하기도 합니다. 의사라는 것이 남의 아픔을 보는 일, 흉한 상처를 보는 일이다 보니 분명히 어떠한 '영성'이나 봉사정신 같은 것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 입니다. 하루 종일 기계처럼 "스트레스 받으셔서 그래요. 쉬세요. 처방전 써드릴게요." 같은 말이나 하려고 어려운 의사 공부를 해내시진 않았을 겁니다.


의사선생님들 중 상당수가 영혼없이 진료하게 된 데에는 '돈' 문제가 크다고 합니다.

대기실에 앉아 계산을 해보니, 환자 하나가 나오면 바로 다음 환자가 들어가고 2~3분 후면 그 다음 환자가 들어갑니다. 게다가 의사선생님의 2~3분, 2~3 마디를 하는데 최소 만원 (환자 4,500원, 의보 6,500원) 정도 되었습니다. 대학교수는 2만원 정도의 특진비도 붙습니다. 전부 의사선생님 혼자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상황을 보면 의사선생님들이 고소득자인 이유를 금방 알게 됩니다. 장사 잘되는 테이크아웃 커피숍보다 회전율이 좋습니다. 대충 대충 빨리 진료할수록 부자가 될 듯 합니다.


아주 드물게 만난 영혼을 담아 진료하는 선생님의 경우에도 돈 문제는 있는 듯 했습니다.

박창진 원장님, 강진한 원장님은 30분, 1시간 가까이 성의있게 상담을 해주셨고 꼼꼼히 시간을 들여 진료를 해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더 받으시지도 않습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의사선생님과 2~30분, 길게는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하다보니, 저에게 맞는 의료상식도 많이 배우게 되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운동하라' 라는 뻔한 말이 아니라, 정말로 제가 무엇을 하면 안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문지식을 가진 의사가 온전히 나의 증상에 관심을 가지고 조언을 해준다는 것이 심리적 만족감도 컸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들에 대한 보상은 오로지 심리적 보상이 전부인 듯 했습니다. 한참 뒤에 박창진 원장님이 페이스북에 올리신 글을 보았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오늘도 새로운 환자에게 한 시간 가량 환자의 치아 구조, 칫솔질 방법, 예방하는 방법에 대해 떠들었다. 그리고 의료수가는 3500원이다. 그래도 엉망인 환자의 입안을 보면서 모른 척 할 수 없어 오늘도 떠들고 있다. 나는 이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한 시간을 열심히 상담해주고 치료를 해주어도 의료수가로 정해진 것이 3500원인가 봅니다. 정확한 상황은 모르나, 제 나름대로 계산을 해보니 원장님이 치과공포증이 있는 꼬마와 30여분간 진료를 안하고 놀아주시며 치과에 오는 것에 겁먹지 않게 하는 것이나, 1년에 한 번 스케일링 받으러 온 환자에게 30여분간 꼼꼼히 상담을 해주시는 것이 금전적으로 보면 손해일 것 같았습니다. 사랑니 하나 발치해 주는데 CT 찍고, 상담하는데 몇 십 분, 발치하는데만 2~30분 정도 걸리고, 일주일 뒤에 실 빼주고 소독해주는데 비용은 3만원 정도 입니다. 시간당으로 계산을 해보면 최저시급도 안 나옵니다.

결국 정성을 들이는 분들은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라서, 환자 하나 하나에게 마음을 쏟는 의사 선생님들이 계속해서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그렇게 진료하실 수 있는지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직 남아계시는 좋은 의사선생님을 보면, 전문가의 최소 시급은 될 수 있도록 의료수가를 정상화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여전히 불신도 큽니다. 약 30여년 이 곳 저 곳 수 많은 병원을 다녔는데, 그 가운데 시간과 관심을 쏟으며 진료를 해주셨던 고마운 선생님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거든요. 반면 무성의하고 기계적인 요식행위같은 진료를 하는 의사선생님은 셀 수 없이 많았고요. 이 분들이 의료수가를 높인다고 갑자기 환자에게 마음을 쏟으며 진료를 해 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2~3분에 한 명 씩 쳐내며, 돈을 더 벌려고 하시지는 않을까요...


다시 고민은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쩌다.... 의사선생님들이 기계처럼 진료를 하게 되어 버린걸까요.........

현재로서는 알음알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 의사선생님들을 찾아 가는 것이 최선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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