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고 붙잡을수록, 되갚아주고 싶은 여자의 심리

라라윈 연애질에 관한 고찰 : 헤어지고 붙잡을수록, 되갚아주고 싶은 여자의 심리

지난 여름, 땡볕에 강남 대로를 걸으며 짜증이 머리 끝까지 나 있었습니다. 큰 수술이니 병원 한 두 군데 더 가보라는 성화에 못 이겨, 다른 병원에 갔다가 무성의한 상담에 화가 났던 겁니다. 일부러 반차까지 내며 왔는데, 예약시간이 지나고도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그 뒤에 의사와 서너마디 하고는 실장과 자세한 이야기를 하라고 토스하고, 이어서 들어온 실장은 더 이상 수술에 대해 설명하기도 귀찮다는 듯 "교정치과 선생님이 추천하셨다면서요? 좋으니까 하셨겠죠. 그냥 믿고 하세요." 라는 말로 퉁치려 들었습니다.

수술의 부작용이나 잠재적 위험 등에 대해 물어보니, "그런거 없어요. 위험하면 하겠어요?" 라며 되묻습니다. 다른 병원에서는 예상되는 부작용과 미리 인지하고 있어야 할 점에 대해서 한 시간은 설명해주던데, 이 곳은 무조건 수술만 하랍니다. 제가 자꾸 질문하는 것이 귀찮았던지 실장은 대뜸 수술비 이야기를 하고, 수술 날짜를 잡자고 덤볐습니다.


"수술은 이 날이 어떠세요? 이 전날 수술이 있거든요."


응??? 수술이 있으니 다음날 하라니요? 교정치과 선생님께서는 가능하면 수술 없으실 때로 날짜를 잡으라고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매일 수술하느라 힘들때 보다는 수술이 적어 컨디션이 좋을 때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수술이 있으니 다음날 하라네요? 아... 수술환자가 있으면 간호사도 당직을 해야 하는데, 같은 날 또는 비슷한 날 수술하면 당직을 한 번만 해도 된다는 소리였습니다.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길래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왔습니다. 상담비 5만원을 내고, 한 시간을 기다려서, 무성의한 상담을 받고 나니 화가 났습니다. 그 병원 사람들이야 손해본 것이 없지만, 저만 손해보고 억울한 느낌이었습니다. 이 억울함이 통쾌함으로 바뀐 것은 일주일 뒤 였습니다.


"잘 지내셨어요? 병원 오셨을 때 불편하신 것은 없으셨어요? 앞으로 더 만족시켜드리는 ㅇㅇ병원 되겠습니다."


의례적인 문자인 것을 알면서도, 괜히 기분이 좋아져습니다.


'흥. 내가 그 병원에 갔을 때 똑바로 했어야지. 니 병원에는 두 번 다시 안 갈거야.'


라며 괜히 고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지나자, 실장은 재차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잘 지내시죠? OO병원 실장이에요. 수술날짜는 고민해 보셨어요~? ^^ 좋은 하루 되세요."


문자도 씹고, 전화도 씹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통쾌해졌습니다.


'갔을 때 잘 했어야지. 수술 전 교정 다 끝나고 수술날짜만 잡으면 되는 환자를 그 따위로 대해서 놓치냐, 바보들 ㅋㅋㅋㅋㅋㅋㅋ'


이러면서 약간 되갚아 준 기분이 신이 났습니다. 저 혼자 신이 난거죠.

그런데 이런 상황, 과정, 느낌이 낯설지 않습니다. 뭔가 데쟈뷰처럼 떠오르는데, 아....

남자친구와 억울하게 헤어졌을 때의 이별 과정, 그 뒤의 심정이랑 너무 똑같습니다.


이별1단계: 나 혼자만 마음이 불편하고, 나 혼자만 서운 섭섭 짜증이 나는데,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다. (심지어 모른다)

이별2단계: 있을 때는 소중한 것을 모르더니, 떠나니 붙잡는다.

이별3단계: 붙잡을수록 통쾌하다. 나만 불편했던 마음이 이젠 너도 애가 타고 불편해진 것 같아 고소하다.



너도 느껴보라는... 되갚아주고 싶은 심리


남자친구는 너무 무심한데 저만 남자친구를 좋아하는 것 같고, 저만 상처받고 외로운 것 같고, 저는 남자친구를 생각하지만 남자친구에게는 제가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 같을 때... 헤어졌습니다. 놀랍게도 남자친구는 제가 이별을 통보하는 날까지 무엇이 서운했고 힘들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은 놀라운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말을 안 했으니까 모르는 것이 당연했겠지요. 하지만 그 때는 남자친구가 모를 수 밖에 없다는 걸 몰랐어요)


헤어지고 한 번도 붙잡지 않았을 때

처음에는 연락하겠지, 그래도 한 번쯤은... 이라며 기다렸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고 정말로 연락이 안오자,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사귈 때도 이기적이고 자기만 아는 독한놈이더니, 지독한 놈이 헤어지고도 연락 한 통도 안하는 차갑고 독한 놈이라며 욕을 했습니다.

사귀는 동안도 혼자 힘들었고, 헤어진 뒤에도 남자는 하나도 안 힘든 것 같아보여 약이 올랐습니다.


헤어지고 더 잘 살고 있는 것 같을 때

헤어진 뒤에 연락도 없어 근황을 모를 때는, 차갑고 독한 놈이라고 욕하면서도 약간의 상상도 했습니다. 혹시 연락하고 싶은데 그 사람도 너무 상처받아서 그럴지도 모른다며... (혼자 소설을 쓴거죠)

그런데 헤어지고 나서 SNS에 즐겁고 놀고 행복에 겨워 보이는 기색을 보이며 연락을 하지 않으면, 배신감과 화가 치밀었습니다. 제가 없어져서 좋을만큼 그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나 싶어서 펑펑 울기도 하고, 보란듯이 더 행복해질거라며 이를 갈기도 했습니다. 더 예뻐지고, 살도 빼고, 노력해서 너보다 10배는 좋은 남자를 만나서 나같이 좋은 여자를 놓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투지가 솟아올랐습니다.


바로 연락해서 힘들다며 붙잡을 때

이 때 가장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없어져 봐야 소중한 것을 알지.. 하는 생각이 들며, 헤어진 남친이 힘들다고 붙잡을수록 헤어지기 전에 쌓였던 서운함과 억울함이 해소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남자친구가 후회할수록, 아파할수록, 형평이 이루어진 느낌도 들고, 드디어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기분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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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헤어지면서 "행복해. 잘 살아" "나 없어도 잘 지낼거야." 라고 했지만, 진짜로 바랐던 것은 '내가 헤어짐을 결심할 때까지 힘들고 아팠던 마음을 너도 겪는 것' 이었나 봅니다.



사랑했던 사람인데, 어떻게 되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는걸까?


헤어지려고 결심할 때 단단히 스스로 세뇌를 하여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헤어지려고 마음 먹었는데, 상대방의 좋은 점, 잘해줬던 것, 추억들을 떠올리면 헤어질 수가 없습니다. 나쁜 점, 나에게 소홀했던 점, 나에게 서운하게 한 점, 잘못했던 것, 그 놈이 나쁜 놈이라는 증거 들만 계속 떠올려야' '헤어지길 잘했어' 라고 합리화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귀면서 잘해준 일, 좋은 일들을 자꾸 떠올리면, 그런 좋은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비합리적이고 이상한 일이 되잖아요. 고로, 헤어질 때는 좋았던 일, 좋은 면 등이 생각나서 울다가도 서운한 일, 나에게 잘못한 일들을 생각하며 독하게 마음을 먹습니다. 즉, 머릿속에 이 남자와의 '안 좋았던 일'만 잔뜩 활성화 되어 있는 상태라서, 억울하고 되갚아주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독하게 세뇌를 하지 않은 상태라면, 사랑했던.. 그리고 아직 마음이 남아있는 전남친이 힘들다는데... 바로 마음이 흔들렸겠지요..


연애는 일반적인 심리와 별개로 취급될 때가 많으나, 이와 같은 되갚아주고 싶은 심리는 일반적으로 흔한 것이기도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사이다설'을 보면 한 쪽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끝나는 일을 되갚아 준 이야기들에 박수를 치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입니다. 못된 상사에게 시달리다가 마지막에 한 방 먹여줬다거나, 안 좋게 퇴사했는데 그 회사가 망했다거나, 뭔가 상대에게 작게라도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혔을 때 속 시원하다고 합니다. 한 쪽이 상처받고 피해를 입었으니, 다른 쪽에서 보상을 해주던가 그와 비슷한 상처나 피해를 입어야 공정하다는 것이지요.

연애를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낭만적이지 않지만, 연애도 비슷합니다.


사귀는 동안 (일하는 동안)

남자친구 때문에 힘들었고 (상사 때문에 힘들었고)

결국 헤어졌는데 (결국 퇴사했는데)

내가 없어지니 후회하고 힘들어하더라 (내가 나오고 나니 상사가 힘들어서 고생하더라)


여기서 통쾌함의 정도는 '상대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가?' 입니다. 다른 보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상대방의 괴로움을 일종의 보상으로 받는 것이죠. 상대가 나만큼 힘들거나 약간의 괴로움이라도 겪으면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꽤 풀립니다.

즉, 헤어진 여자친구를 정말로 붙잡고 싶다면, 헤어진 여자친구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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