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서 보았던 자식 먼저 보낸 부모의 삶

라라윈 어떤 하루 : 곁에서 본 자식먼저 보낸 부모의 삶

학원 강사를 하던 시절입니다. 미술학원 원장님은 작가로도 활동하시며 아파트 상가에 아동미술학원을 꾸리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남편분도 꽤 수입이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의 높은 직책이라 소일거리 삼아 학원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학원보다 월급 10만원을 더 주시고, 잘 챙겨주셔서 좋았습니다. 수업이 빌 때, 원장님과 틈틈히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무척 즐거웠습니다.

어떤 날은 흔한 호구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 흔한 호구조사


"형제 관계가 어떻게 돼요?"

"원장님은 자녀가 어떻게 되세요?"


이런 흔한 질문들인데...


"저는 아들이 하나 있어요. 외아들이죠.
실은 아이가 하나 더 있었는데 큰 아이가 일곱살 때 아파서 저 세상으로 갔어요..

그래서 지금은 둘째가 외동아들이 되었죠. ^^"


이미 수 십년간 한국인의 흔한 호구조사에 단련이 되신 것인지..

원장님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이야기를 하시고, 제가 미안해 할까봐 농담처럼 남은 아들 이야기를 하시며 분위기를 바꾸셨습니다. 제가 죄송해하니, 괜찮다며 오히려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큰 애가 말도 잘 듣고 더 똑똑해서 말썽쟁이 둘째가 치일 뻔 했는데, 지금은 혼자니 제 세상이 된거죠 뭐, ㅎㅎㅎ"

"외아들이니 혼자 다 가지고 얼마나 좋아. 다 제꺼잖아. ㅎㅎㅎ"


저도 모르게 원장님을 따라 웃으며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마쳤지만, 속으로는 몹시 당황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거든요. 한국에서 가족관계나 나이를 묻는 것은 흔한 질문이니,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아픈 곳을 후벼파는 질문이 될거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 안 겪어본 사람은 모름


원장님과 함께 일하던 시절은 제가 무척 힘들 때였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아프고 힘든 때여서 엄마한테 의지하듯, 원장님께 많은 위안을 구하곤 했습니다. 저를 위로해 주시다가, 원장님의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도 흘러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너무 힘들었죠. 나도 따라서 죽고 싶었어요.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너무 속상했어요. 그 때는 제 정신이 아니었으니까... 그 때 종교가 힘이 되었죠. 그리고 갓난쟁이 둘째가 있었으니까.. 힘을 내야 겠더라고요.

그 때 생각하면......"


저도 덩달아 울먹울먹하며 눈시울이 그렁그렁했지만... 그 때는 그저 제 상황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 같아... '세상에는 나보다 더 힘들었던 사람도 있구나..'라는 위안을 얻었을 뿐 이었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엄마가 아닌 사람은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원장님은 자신도 몹시 괴롭고, 20여년이 지났어도 가슴에 묻고 사시면서, 남은 아들을 먼저 걱정하셨습니다.


남아있는 아들은 이제 대학생이 되어 타지에서 대학에 다니는데, 생활력있게 씩씩하게 혼자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원장님 입장에서는 너무 철들은, 씩씩하려고 애쓰는 것이 안타까우셨나봅니다.


"아직 어린데.. 그렇게까지 철들은 척 할 필요없는데...

어렸을 때는 형이 왜 없어졌냐며 이해를 못 하다가, 커서는 자신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니 형 몫까지 더 잘해야 한다는 과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아 안쓰러울 때가 많아요. 아들에게 아빠엄마는 알아서 잘 살테니 너는 너 좋은 일을 마음껏 하라고 격려를 해주고 유학도 가고 다 하라고 하는데.. 어느 순간 보면 형의 자리까지 채우려고 드네요."


먼저 간 자녀를 둔 부모 마음이나, 그런 형을 둔 동생의 마음을 제가 온전히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저 힘들겠다.. 라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