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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기사 아저씨 덕분에 드라마 같던 하루

· 댓글개 · 라라윈

라라윈 특별한 날 : 버스 기사 아저씨 덕분에 드라마 같던 하루

처음 남양주로 집보러 다닐 때, 직행버스가 있어서 잠실까지 30분이면 간다는 소리를 듣긴 했습니다. 한 번 타보니 정말로 버스가 30분 만에 남양주에서 잠실역 환승센터까지 갑니다. 다만, 버스가 서울처럼 2~3분에 한 대 오질 않습니다. 2~30분에 한 대가 와서, "30분이면 가~~" 라고 했지만, "버스가 안 와 ㅠㅠ 다음 버스 30분 뒤에 온 대. 미안해. 좀 기다려줘..." 라는 상황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남양주 버스 간격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해서, 집에서 시간을 보고 나갔습니다.

운 좋게 딱 버스가 옵니다.

'유후~~~~~' 콧노래를 부르며 지갑을 꺼내들며, 버스 기사님과 아이컨택을 했습니다. 여기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타는 기색을 보여야 서십니다. 카드를 찍으려고 지갑을 펼치는데.....


어?????


버스 카드 놓고온 날


카드가 없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

카드 한 장 쓰는데 카드는 없고, 지갑 안에는 오늘따라 만원 짜리만 있습니다. ㅜㅜㅜㅜㅜㅜㅜ


"저, 만원 짜리 넣어도 돼요?"


라고 여쭤보니, 기사님이 "만원 짜린 안돼요." 라고 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카드도 없고 잔돈도 없고 ㅠㅠ

버스에 타지 못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는데, 기사님이 손짓을 하셨습니다.


"그냥 타세요."


그래도 되나 싶어 쭈볏대자,


"빨리 타세요. 다음에 또 탈거잖아요, 다음에 내요. 어서 타요."


라며 태워 주셨습니다. 저는 잠실에 갈 일이 거의 없어, 다음이 언제 일지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주변에 돈 바꿀 슈퍼나 가게도 없고, 이 버스를 놓치면 30분 정도 기다려야 될 지도 몰라, 염치 불구하고 차에 올라탔습니다. 얼떨결에 올라탔는데,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잠실로 가는 30분 사이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리면서 감사하다고 만원을 드리고 갈까.

그냥 돈을 내밀면 뭣하니 더운데 시원한 음료 한 잔 사 드리라고 할까.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도 태워주세요, 라고 할까.'


이건 무슨 팁 드리는 것도 아니고, 선의로 태워주셨는데 너무 바로 돈으로 갚는 것 같아 별로인 것 같았습니다.


'환승센터에서 후다닥 뛰면 바로 오지상 치즈케이크 가게와 여러 가게들이 있으니 거기서 커피 한 잔 사다드릴까,

아냐, 차에 계속 계셔야 되서 화장실 가시기도 힘들텐데 당장 먹어 치워야 되는 음료는 별로 인 것 같으니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는게 낫겠다, 그리고 돈도 바꿔서 3천원 내야지,'


의식의 흐름은 결국 간단한 주전부리 선물과 버스비를 내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습니다.

환승센터니까 잠시 머무르실 지도 모르니, 몇 시에 다시 출발하시는지 여쭤보았습니다. 곧 가신다고 합니다.

그래도 후다닥 뛰어 갔다오면 될 것 같아, 정말 정말 감사하다고 꾸뻑 몇 번을 인사를 드리고, 환승센터에서 제일 가까이에 보이는 오지상 치즈 케이크 하나를 사고, 돈도 바꾸었습니다. 다행히 손이 날랜 직원 분들이 빨리 포장하고 계산해 주시길래 후다닥 뛰어 왔습니다.

그러나 5번 게이트는 휑.....


버스 카드 놓고온 날


버스는 떠나고 없었습니다......


엄청 빨리 뛰어갔다 온 것 같은데, 그 사이 떠나신 것 같아 허무했습니다. 돌아올 때 보니, 환승센터라고 해서 오래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보통 버스 정류장처럼 승객을 태우면 바로 출발하는 거였는데, 몰랐어요.... 고속버스 터미널 같이 생겨서 고속버스처럼 잠시 정차했다가 출발하는 줄 알았습니다.

치즈 케이크를 괜히 샀나 싶기도 하고, 낯선 아저씨께 은혜를 입으니 벅차오르게 감사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버스에 올라타서 잠실에 온 30분 사이 독특한 감정의 향연이 펼쳐진 날이었습니다. 감사하고 기쁘면서도 죄송스러워서, 아저씨를 다시 만나기는 힘들테니 다른 사람에게 저도 베풀자는 마음으로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달랬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돌아오는 길. 1200번을 탈까, 다시 M2316번을 탈까 하다가 1200번은 여기 저기 거쳐서 가길래 직행 버스를 타러 환승센터로 왔습니다. 잠실까지 왔는데 어딜 들를까, 화장실을 갔다 올까 말까 하는데 10분 뒤에 버스가 들어온다길래 그냥 기다려서 탔습니다.

버스 카드를 놓고 왔으니 아까 바꿔둔 현금 3천원을 꺼내어 들고 서 있었습니다. 3천원을 내며 500원 거슬러 달라고 하려고 기사님을 올려다 보는데, 아까 그 분이셨습니다!


어쩜 이런 우연이...

이런건 주로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었는데....


제가 아까의 버스비를 더 내려고 주섬주섬 지갑을 열자, 아저씨는 반가운 미소를 지어주시며 얼른 타라고 손짓을 하셨습니다.


"아유, 됐어요. 빨리 타요. 얼른 타. 얼른."


아까 것은 되었으니 그냥 타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바꿔둔 돈이 있어 잽싸게 5천원 짜리를 꺼내 요금을 내고 감사인사를 드리며 버스를 탔습니다.

뒷 사람도 있어 얼떨결에 앉았는데, 앉고 보니 제 무릎 위에 아까 아저씨 드리려고 샀던 치즈 케이크가 있었습니다. 이미 제가 먹을 계획이라 솔직히 잠깐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저야 아무 때나 또 사 먹으면 되고, 은인 아저씨는 언제 다시 뵐지 모르니 선물해 드리고 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내리면서 깜짝 선물 드리고 갈 생각을 하자 저도 신이 났습니다.

쑥 쇼핑백을 내밀며 아까 드리려고 샀던 거라고 하고 건네드리고 후다닥 내렸습니다.


마음 좋은 버스 기사 아저씨 덕분에 훈훈하고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M2316 기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일찍 도착해서 일 잘 보고 돌아왔어요.

태워주시지 않았으면, 씩씩거리며 집에 다시 갔다가 와야 해서, 늦고 엉망진창이 되었을거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훈훈하고 행복한 날이 되었어요.



[아직 훈훈한 세상]

- 교통사고 합의금을 대신 내준 낯선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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